T-14 전차 시제기
러시아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는 차세대 주력전차 T-14가 시험 중인 모습이 이례적으로 포착됐다. 사업의 향방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가운데 공개된 영상에서 T-14는 사격장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확인됐으며, 정례적인 사격장 훈련으로 보였다. T-14는 비공식적으로 T-95로 불린 소련의 차세대 전차 개발 사업에서 파생된 기종이다. T-95는 1990년대 말 실전배치를 목표로 소련 기갑전 능력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개발됐다. 그러나 소련 붕괴로 사업이 크게 지연됐고, 결국 2000년대에 취소됐다. 이후 매우 유사한 설계 개념을 바탕으로 후속 기종인 T-14가 개발됐다.

2015년 처음 공개됐을 당시 T-14는 10년 안에 러시아 육군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의 주력전차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됐다. 이는 1960년대 소련 육군에서 T-64가 차지했던 위상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T-14의 실전배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중국이 러시아를 추월해 차세대 전차를 가장 먼저 실전배치한 국가가 됐고, 2025년 10월에는 100식 전차가 공개됐다. 훨씬 새로운 설계인 100식은 현대의 고강도 전투에 더 잘 맞도록 최적화된 것으로 보인다. T-14가 전통적인 장갑 방호와 화력에 더 큰 비중을 뒀다면, 100식은 능동방호체계와 기동성, 무인기와의 통합을 더욱 중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훈련장에서 촬영된 T-14 영상이 공개된 것은 러시아 내 사기를 높이려는 목적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T-14의 가장 중요한 혁신 가운데 하나는 무인 포탑과 장갑 승무원 캡슐이다. 이전 세대 전차처럼 승무원을 포탑 안에 배치하지 않고, 승무원 3명 전원을 차체 전면의 중장갑 구획에 함께 배치해 인명 피해 위험을 줄였다. 포탑은 기존 전차보다 훨씬 가벼워졌으며, 이에 따라 전체 중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차체를 더 무겁게 만들어 승무원 방호력을 높일 수 있다. T-14는 복합장갑과 폭발반응장갑에 더해 아프가니트 능동방호체계도 탑재해 훨씬 뛰어난 하드킬 능동방호 능력을 갖춘다.

T-14는 기존 전차보다 훨씬 발전된 센서 체계와 전장관리체계도 갖추고 있다. 여러 전자광학 카메라를 탑재해 거의 360도에 가까운 상황인식 능력을 제공하며, 첨단 열상장비와 디지털 디스플레이, 통합 통신체계를 통해 전장에서 표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서방과 러시아 전문가들은 T-14가 기존 러시아 전차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실전배치되지 못했다고 널리 주장해왔지만, 이러한 설명에는 상당한 의문이 남는다. 소수라도 실전배치된다면 러시아 전차산업의 명성을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인도나 알제리 같은 고객국으로 수출할 가능성도 열 수 있다. T-14는 구형 전차들을 지원하는 지휘전차로 운용될 경우 전력에 비해 훨씬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러시아 방산업계가 실제 운용 가능한 수준으로 완성할 수 있다면 도입 비용 대비 효과도 매우 높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