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25 폭스배트
1976년 9월 6일 소련 방공군 조종사 빅토르 벨렌코 중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투기였던 MiG-25P 폭스배트를 탈취해 냉전 시기 가장 유명한 항공기 망명 사건을 일으켰다. 복수의 서방 소식통에 따르면 벨렌코는 모스크바 근무 당시 서방 정보기관과 접촉한 적이 있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동쪽 추구옙카에 배치돼 있었으며, MiG-25P를 몰고 일본 하코다테공항으로 비행했다. MiG-25는 당시 소련 전투기 가운데 서방에서 단연 가장 큰 관심을 끈 기종이었다. 1971년부터 이집트 기지에 배치돼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점령지역 상공에서 작전하며 압도적인 비행성능을 과시한 바 있다.

벨렌코의 망명으로 서방 전문가들은 당시 소련의 최신 전투항공 기술을 직접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신형 F-14나 F-15 조종사가 소련으로 망명한 것에 비견할 만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MiG-25의 성능은 서방 전문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엔진의 깨끗한 연소 특성과 강력한 레이더, 극고속·고고도 상태를 장시간 유지하는 능력은 당시 경쟁 기종이 없을 정도였다. MiG-25의 개발은 F-15의 요구성능을 결정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5년부터 실전 배치된 F-15는 대형 고성능 소련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당초보다 훨씬 높은 성능을 목표로 설계됐다.

벨렌코의 망명과 관련해 리처드 N. 설리번은 1976년 12월 사이언스 뉴스 기고에서 서방 소식통들이 MiG-25의 성능을 축소해 평가하려는 움직임을 널리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MiG-25가 “F-4보다 시속 수백 마일 더 빠르고 수천 피트 더 높은 고도로 비행한다”는 점과 “이스라엘 F-4가 사실상 대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영공을 자유롭게 비행해 왔다”는 사실은 이런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당시 미국에서 MiG-25 수백 대와 비행성능으로 견줄 수 있는 기종은 18대에 불과한 소수의 SR-71뿐이었다. 벨렌코의 망명 이후 소련 방산업계는 MiG-25용 신형 항전장비를 신속히 개발해 MiG-25PD 사양으로 개량했다. 여기에는 MiG-23ML의 사피르-23을 대형화한 사피르-25 레이더가 포함됐으며, 이 레이더는 초기의 하방탐지·하방공격 능력을 갖춘 레이더 가운데 하나였다.

MiG-25는 지금도 고도 3만7,650m를 비롯한 여러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략정찰 임무에서는 통상 약 2만2,000m 고도에서 비행한다. 마하 2.4의 순항속도와 마하 3.2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도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기체는 강력한 방공망이 구축된 영공에서도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실제로 사진정찰과 전자정찰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를 거듭 입증했다. 폭스배트는 높은 속도와 작전고도 덕분에 1970년대 이스라엘의 F-4E 전투기와 MIM-23 방공체계에 사실상 격추되지 않았다. 이후 인도 공군이 파키스탄 상공을 비행할 때도 비슷한 수준의 생존성을 보여줬으며, 알제리 공군이 모로코와 스페인 상공에서 운용했을 때와 이라크 공군이 이란군 및 미군과 교전했을 때도 유사한 성과를 보였다.

이란 F-14가 격추했을 가능성이 있는 1건을 제외하면, 여러 국가가 여러 차례 요격을 시도했음에도 표준 순항고도와 속도로 비행하는 MiG-25를 공대공 전투에서 격추한 사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MiG-25는 소련 전투항공 산업이 이룬 가장 뛰어난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며, 러시아에서는 실질적인 후속 기종 없이 2013년에야 퇴역했다. MiG-25의 후계기이자 설계를 크게 계승한 MiG-31 폭스하운드는 공대공 전투성능을 기준으로 보면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러시아가 운용하는 가장 강력한 전술전투기 가운데 하나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거듭 입증됐다. 소련 해체 이후의 러시아가 앞으로 국제적으로 이와 비슷한 위상을 갖는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를 다시 개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큰 의문으로 남아 있다.